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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호주의 디카프리오가 된 사연..호화여객선에서 노숙하다

tvdosa 0 7032 0 0
호화여객선을 타고 태즈메니아로 향하다

멜번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저녁 9시. 태즈메니아로 가는 경로 중, 유일한 배편인 ‘스피릿 오브 태즈메니아(Spirit of Tasmania)’에 몸을 실었다. 이 호화여객선은 특급 호텔을 연상시키는 실내 인테리어에, 카지노와 칵테일 바 같은 고급유흥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럭셔리한 시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단 이 배 안에서 태즈메니아에 도착하는 이튿날 아침까지 어떻게 하면 잘 곳을 마련할 수 있을까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마치 ‘타이타닉’에 나오는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큼이나 궁한 처지의 나였다. 여행경비를 아끼느라 취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초라한 탑승권을 산 탓이었다.ㅡㅜ;; 


내가 탑승했던 스피릿 오브 태즈매니아 호와 그 입구 (아래) ⓒ

하지만 방법이 있었다. 어디나 그렇듯이, 새벽 2시경 나와 같은 선실에 탄 제2, 제3의 ‘잭’들이 고급 카펫을 깔아놓은 바닥에 그대로 몸을 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도 분위기를 보아 점퍼를 깔고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나를 깨웠다. 선실 스태프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났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으나, 배에서 내릴 무렵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듯 몸은 무거웠다. 이윽고 날이 밝았을 때 다소 버거운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니, 데본포트(Devonport)에 상륙한 나를 발견했다.

- 마침내 4번째 우프에 

델로레인(Deloraine)에서 나를 맞이한 태즈메니아에서의 첫번째 우프는 잭키스 마쉬(Jacky’s Marsh)라는 습지에 위치한 곳이었다. 마치 지리산의 어느 깊숙한 산골짜기를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틀린 점은 그다지 산세가 험한 곳은 아니라는 점….

이곳의 호스트 맥스(Max)와 마가렛(Margaret)은 전형적인 농사꾼 부부였다. 그들이 우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우퍼였던 나를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나를 집에 데려가고 나서 어떻게 대접해야할지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태즈메니아의 대부분의 우프농가가 그렇듯 그들도 태양열에 의존하여 전력을 얻고 있었다. 워낙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어서 전력선을 매설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궂은 날엔 제너레이터(발전기)를 돌려야 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전력을 이용하기 위해 텔레비전, 라디오 등은 소형이었고, 냉장고는 가스로 작동하는 것이었다. 또한 밤이면 전력수급이 어려워지므로 최대한 사용을 자제해야 했다. 


평온한 호스트 농장의 주변 광경과 태양열에 의존하는 맥스의 집 ⓒ

호주의 대부분의 가정은 개를 키운다. 너나 할 것 없이 개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각 주에선 개 등록제를 시행하고, 해마다 50달러 정도의 비용(개 보유세?)을 지불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서구 가정에서 개가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개는 한 식구나 다름이 없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웬만한 사람과 거의 같은 대접을 받는다. 

추후 다시 얘기되겠지만, 고양이나 개들이 사료가 아닌, 특별히 만들어진 햄이며 고기를 하루 삼시세끼 꼬박 먹는 걸 보고 휘둥그레진 적이 있었다. 고향 우리집 안마당에서 뒹구는 개들을 떠올려보니 문득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X견이지만 이 땅에서 태어났었다면 이렇듯 사람 못지않은 융숭(!)한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 해서 말이다. 

우리나라 변견들은 부러워할 일인지 모른다. 

마가렛은 ‘Deloraine Detention School’이라는 곳에서 소위 ‘일을 저지른 문제아’들을 교육, 지도하는 교사이고, KFC 상징인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주는 맥스는 전업 농부로서 소와 말, 닭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맥스와 마가렛 역시 한창 시절 여행을 좋아하던 이들이어서 여행자인 나에게 태즈메니아를 비롯한 호주여행에 관한 많은 정보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주었다. 이들 내외도 여행을 통해 만나 함께 살게 된 부부였다. 

마가렛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해서인지 나에게 비교적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또박또박 말해주었고, 여러 모로 그녀로부터 많은 언어적인 도움을 받게 되었다. 반면, 맥스의 말은 전형적인 호주 시골농부의 말이라 참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내가 외국인인 사실을 자꾸 까먹어서인지... 몇 번이나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끝내 그의 말하는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토박이 농사꾼 맥스와 같이 대부분의 일과를 보내는 나로서는 애를 참 많이 먹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자 그와 대화가 좀 통하는가 싶었는데, 그땐 영어가 늘었기보다는 눈치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성품만큼은 언제나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절함과 따뜻함 그 자체였다. 그는 또한 내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 정말 순박한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 그의 굵직한 너털웃음은 잊을 수가 없다. 


일하던 중 바늘두더지가 출현하자 맥스가 바로 붙잡아 보여주었다. 
체험 현장 학습, 소 젖을 짜다가 ^^ 양털 깎는 이웃을 방문해서 ⓒ  마을 파티에 초대받아서 한컷 ^^ ⓒ

호주에선 연교차가 없고 일교차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는데, 특히 태즈메니아는 정말 그랬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하고 점심엔 뜨겁고 그런 날의 반복이었다. 일 자체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으나, 한창 일을 할 때 내리쬐는 땡볕은 정말 ‘죽음’(!)이었다.

나의 하루는 아침 일찍 소젖을 짜는 일로 시작되었다. 이는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호스트가 먹기 위한 것이었다. 호스트를 위한 것으로는 충분한 양이어서 이웃에게도 돌렸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젖을 짤 때는 꼭 새끼를 곁에 두게 하는 것이었다. 맥스는 “새끼를 곁에 둬야 양질의 젖을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 외에 했던 일은 울타리 경계를 세우기 위해 넓은 지역에 말뚝을 박는 일인데, 꽤나 힘든 일이었다. 밭에 소나 말을 풀어 놓고 방목시키는 일을 하였다. 당분간 소나 말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다. 


펜스 말뚝박기, 소몰이, 양떼 몰이, 버니(Burnie)에 다녀오던 중 

태즈메니아는 특히나 제반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인력수급이나, 각종 서비스의 접근성이 특히나 낙후해있어, 이렇게 외따로 떨어져 사는 농부들에겐 웬만한 수리는 알아서 해결해야하는 등 소위 ‘멀티테크니션’이 되도록 요구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말뚝박기에 한창일 때 도르레에 해당하는 부분이 파열되는 일이 벌어졌다. 교체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멀티테크니션인 우리 맥스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은 맥스와 그 작은 부품을 사러 가느라 무려 4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차로 가야했다. 그날은 하루 공치는 날이었다. 

우퍼인 나에겐 멋진(?) 하루였는데,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손수 운전하는 기분은 색달랐다. 가는 길은 맥스가 운전했지만, 오늘 길은 운전을 그가 내게 맡긴 덕분이었다. 비록 내가 군운전병 출신이긴 했지만, 좌차선 운전에는 익숙지가 않았음에도 그는 나를 믿고 맡긴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평화롭지만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맥스와 나는 존(John)이라는 이웃을 방문하게 되었다. 존 역시 우프 농가를 운영하는 사람인데, 그가 바로 맥스에게 우프 호스팅을 추천한 사람이었다. 나이도 맥스와 비슷하게 쉰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여태껏 독신으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이였다. 

존의 토지는 그야말로 호주의 ‘부시워킹(Bushwalking)이 어떤 건지 제대로 알게 해주는 곳이었다. 완전히 수풀림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그의 거처는 밀림을 방불케 했다.


존의 집에서 보냈던 하루~~ ⓒ

그 집에는 우퍼가 몇 있었는데, 퀸즐랜드(Queensland)에서 온 그의 친구 탐(Tom), 독일인인 제니(Jenny), 이스라엘인 가이(Guy), 그리고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인 영국 BBC 방송 프리랜서 리포터 믹(Mick)이었다. 모두 친근한 인상을 주는 이들이었다.

태즈메니아에 오기 전부터 난 그 유명한 크래들 산(Cradle mountain)에 갈 계획이 있었다. 전에 맥스는 나에게 크래들 산에 다녀올 수 있도록 차를 빌려주겠다는 고마운 제의를 했었다. 

근데 며칠 후, 탐을 비롯한 우퍼들이 태즈메니아의 주도(州都)인 호바트(Hobart)를 경유해 퀸스타운(Queenstown)에 다녀온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이는 맥스의 차를 빌려 탈 필요 없이 태즈메니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이들의 여행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우퍼에서 여행자의 신분으로 잠시 복귀하게 된 것을 의미했다. 

날짜가 가까워오자 또다시 내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하는데….
다음 편에선 태즈메니아 여행으로 초대한다. 많은 기대있으시길.. 

(다음 편에 계속~)



/서용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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